베일벗은 밸류업 가이드라인…지배구조 개선, 자사주소각 계획 공시

금융위, 밸류업 프로그램 일환 기업가치제고계획 가이드라인 발표

자사주 취득 및 소각, 배당계획 등 미래목표 담은 보고서 공시

정부가 국내증시 저평가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가이드라인이 베일을 벗었다. 앞으로 상장기업들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이라는 일종의 비전 보고서를 투자자들에게 공시한다. 여기에는 고질적인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기업의 자체 평가와 개선 목표 등도 구체적으로 담길 수 있다. 단, 기업들이 얼마나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공시 참여부터 작성 내용까지 모두 기업 자율에 맡겨있고 정부가 참여 기업에게 줄 인센티브나 페널티는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2일 금융위원회는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기업가치제고계획 가이드라인 세부 내용을 발표했다. 기업가치제고계획은 사장기업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종합적 모습을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론 전체 국내 증시에 활발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다.

기존의 공시는 기업들의 재무상태, 계약체결 등 이미 발생했거나 결정한 사항을 중심으로 투자자에게 알려줬다면, 기업가치제고계획은 기업의 미래 지향성을 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업들은 기업개요, 현황진단, 목표설정, 계획수립, 이행평가, 소통 등 6개 항목에 대해 적어야 한다. 특히 현황진단은 기존 공시에서 다룬 재무 지표뿐만 아니라 지배구조와 관련한 비재무지표도 담길 수 있다. 투자자 신뢰를 쌓아 장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배당금액, 배당수익률, 자사주 신규취득 및 소각 등 주주환원 관련 지표도 여기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혹은 모자회사 중복상장 이슈가 있는 경우 모회사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 계획을 설명할 수 있다고 금융위는 보고있다.

목표설정 항목에서는 현황진단에서 다룬 문제를 어떻게 개선시킬 것인지 중장기적 목표를 제시한다. 계획수립 항목에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적는다. 이행평가는 그간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와 잘된 점과 보완될 점을 적고, 마지막 소통 항목은 투자자들과의 소통 현황을 자세히 기재할 수 있다. 의도적으로 허위 내용을 공시한 경우가 아니라면 계획을 이행하는 데 실패했더라도 특별한 제재가 주어지지 않는다. 여타 기업공시와 마찬가지로 수정 및 보완도 가능하다.

기업가치제고계획에 담기는 이러한 내용은 공정공시 대상 내용도 포함되는 만큼 기업들은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에 먼저 공시해야 한다.

모든 게 자율이지만 인센티브, 페널티 불분명

금융위 “진정성있는 공시를 위해 자율성 맡겨야”

업계 “테마주 이용하는 무분별 기업 공시 우려”

얼마나 많은 기업이 기업가치제고계획 공시에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참여 여부부터 어떤 내용을 담을지가 모두 기업 자율에 맡겨있기 때문이다. 참여 기업에 제공되는 인센티브도 아직까진 모호하다. 정부는 시장이 기대하는 세제지원 방안은 추가 검토를 거쳐 확정되는 대로 발표하겠다고 밝혔는데 쉽지 않을 수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추진한다고 밝힌 각종 법인세, 배당세 혜택은 법개정 사안인만큼 야당 협조없인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진정성있는 공시를 유도하기 위해선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박민우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형식적으로 얼마든 가능하지만 증시 밸류업을 위해선 진정성있는 공시가 중요하다”며 “제대로 공시하고 투자자와 소통하는 기업이 소수일지라도 정부는 계속해서 지원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 작성 과정에 참여한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도 “기업을 움직일 때 제일 중요한 것은 피어프레셔(Peer pressure·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압박)”라며 “공시를 하는 기업과 하지 않는 기업 간 투자자들 관심과 반응에서 차이가 생기면 저절로 공시에 대한 압박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가치제고계획 공시 아이디어는 사실 지난 2022년 발표된 일본의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인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에서 영향을 받았다. 도쿄증권거래소는지난해 3월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하 상장사들에게 자본수익성과 성장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 방침과 구체적인 이행 목표 공개를 요구했다.

박 국장은 “일본은 지난해 말까지 실제 관련 내용을 공시한 기업이 대상의 30%가 채 안 됐다가 점차 확대되면서 현재 35%까지 증가했다”며 “기업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제대로 공시를 하고, 그에 따라 해당 기업에 투자가 많이 늘어난다면, 나도 공시를 하고 싶다, 나도 믿어달라는 기업들이 많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우려섞인 반응이 나온다. A증권사 관계자는 “오히려 기업들이 이러한 공시를 이용해 잘나가는 테마가 있으면 그것도 하겠다고 중장기 계획에 공시하고 애꿎은 개미들은 그걸 보고 몰리는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B증권사 관계자도 “코리아디스카운트는 물적분할 후 쪼개기 상장 같은 주주권한침해가 핵심이자 현재도 계속 일어나는 문제”라며 “강제성 없는 공시만으로 국내증시가 갑자기 장기 투자로 돌아설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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